사건사고

실미도 684부대의 진실 사건 파일

크리에이터즈 2020.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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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사건이란? 1971년 경기도 부천군 용유면 무의리 실미도에서 684 부대원들이 훈련을 받아오던중 교관을 살해하고 부대를 이탈하여 버스를 탈튀하여 청와대로 향했지만 서울 대방동에서 군의 저지를 받은뒤 수류탄으로 자폭을 한 사건이다

 

김신조 사건



실미도 사건이 일어난 계기는 1968년 1월 21일 북한이 무장게릴라를 보내 전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 이 사건을
1.21 사태라고 불린다 이 일에 분노한 박정희는 같은해 김일성을 암살한 목적으로 비밀리에 684 부대를 창설하게 된다

 

 

실미도 실제 훈련사진

인천광역시 중구 실미도 위치에 비밀훈련기지를 마련했고 31명의 인원으로 구성하여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된 김형욱하에  3년 4개월동안의 혹독한 훈련속에서 7명의 부대원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 사유는 심장마비, 섬 탈출, 명령 불복종, 근처에 있는 민가에 여성을 강간하고 자살한 인원들이다

 

실미도 부대원



3개월이 될 무렵, 평양에 침투를 해서 김일성의 목을 따오는 실전명령을 기다렸지만 도중에 작전은 취소되고 3년이나 작전명령은 떨어지지 않게 되었고 지옥 같은 훈련이 계속되자 불만속에 실미도 부대원들은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고 있었다

 

봉급과 음식 배급이 부실해지고 암살 계획이 점차 뒤로 밀려나고 교관 및 조교들이 대부분 군 부대를 떠나고 이쪽과 전혀 관련이 없는 기간원들이 들어오자 훈련병들은 점차 불안해져 갔다
그러던중 보안 유지를 목적으로 훈련병들을 몰살시키자는 얘기가 나돌았고 이 사실을 알게된 부대원들은 박정희를 만나 담판을 짓고자 목숨을 건 투쟁을 하게 된다

 

1971년 8월23일 새벽 6시, 실미도 부대에는 피 비린내가 나기 시작다 24명의 실미도 부대원들은 일어섰고 교관들과 기간병력들을 살해를 하고 섬을 장악 한다
출장 나가있던 김방일 소대장과 5명 등 총 6명이 살아남았으며 이들은 화장실이나 숲 속에 숨거나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건졌다

 

12시 20분 경, 섬 실미도를 빠져나온 23명의 부대원들은 인천 옥련동에 상륙하여 인천 시내버스를 탈취한뒤 청와대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육군과 총격전이 벌어졌고 버스 타이어가 터져서 더 이상 이동하게 없게 되는 상황이 되자 다시 시외버스를 탈취를 하여 청와대로 향했다

 

실미도 버스

 

14시 15분 경,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육군은 부대원들을 포위를 했다 실미도 부대원들은 총격전을 벌였지만 포위망을 뚫을 가능성이 없어지자 버스 안에서 수류탄으로 자폭하였다
여기서 4명은 죽지 않았지만 체포되어 군법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총살되었다

당시 정부는 처음에 무장공비라고 발표하였다가 하루만에 군 특수범이라고 정정 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684부대의 대한 진실을 30여년간 은폐를 했다
하지만 2003년, 영화 실미도가 개봉하면서 이 사건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사형수, 조폭 등 범죄자로 이루어진 실미도 부대원들로 표현했지만 실미도 부대원들의 유족에 따르면 높은 보수를 준다는 정보기관원들의 거짓말에 속은 평범한 시민들이 자원입대를 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것과 같이 범죄자 출신은 전혀 없었고 시골의 농민이나 일용직 노동자 출신이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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